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의 이야기 내글

                                                                                                                                       <2012. 7. 19. 속초>


학창시절 숙제가 아닌
, 그렇다고 원고료를 받는것도 아닌 말 그대로 그냥 글을 쓰면서 누군가 내 글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과,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기보다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을까.

 

책을 통해 접하는 글과는 다르게 인터넷이라는 개인 매체를 통해 나와 별달라 보일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 또래로 짐작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친구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글을 써보았다. 그런데 내 이야기는 그들이 하는 말처럼 떳떳하지도 밝지도 않았다. 그들의 살아온 삶이 힘들면 힘들었던대로 어쩌면 그리 당당한 알리바이를 가진 것 인지. 그런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내자신 에게 자격지심도 생겼다. 그러나 당당하지 못한 나이지만,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그들 각 각 다 다른 마음과 생각으로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까페에 글을 올리듯 나같은 경우는 그냥 혼잣말 하듯이 주절주절 쓰고 싶었다. 그런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일기장이 아닌 곳에 나를 모르는 혹은 나도 모르게 내가 아는 사람이 읽어볼지도 모르는 글이라 생각하니 원하던 만큼의 글이 자유롭게 써지질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 포털이나 나를 전혀 알아챌 수 없게 신분과 나이가 드러나지 않게 여기저기 블로그를 만들고 뜻모를 은유로 가득찬 글들을 쓰곤 했다.

 

그러다 최근 파란닷컴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여기저기중의 하나인 그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과 사진들을 하드디스크에 다운받으며 문득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의 글을 쓰려면 이 하드디스크에 얼마든지 쓸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이 일을 계기로 내 맘 가는대로 글을 써보자. 목적은 나를 드러내 보는 것. 유명 블로거도 아니면서 누군가 내 글을 볼지 말지 연연해 하는건 정말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이제부터 내 생의 알리바이를 만들어가고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정박해 있는 배이다. 영영 출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없을수는 없다. 바다 한가운데 이야기는 몰라도 부둣가 이야기는 내가 더 많이 알수 있다. 내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나와 나누는 대화라고나 할까.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일이기도 하다. 부디 잘 이어나가길. 봇물처럼 터지면 터지는대로, 가늘게 이어지면 이어지는대로, 쉬어가고 싶으면 쉬어가는대로.


이사 내글

분가하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하더니,

이젠 또 이사가 그렇게 하고 싶냐고.

이사가고 나면 또 다른 뭔가 꼭 하고 싶은게 나타나서 또 거기에 매달리게 될 거라고.

더 이상 자유로울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상황에서 또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보다 근본적인걸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친구가 말했다.

 

순간, 정곡을 찔린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정작 내가 힘들 땐 같이 있어주지 않은 서운함이 쌓여서였을까?

나를 생각한다며 해준 그런 분석 따위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네가 나에 대해 뭘 그리 잘 아느냐고 쏘아부치고 싶은걸 꾹 참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지금 내가 간절히 원하는게 있고, 그걸 해보겠다는 거야.

만약 그 다음에도 또 뭘 하고 싶은게 생긴다면 또, 해보면 되는거지.

라고 조용히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거 뭐, 그런게 뭔데.

세계경제는 위태위태하고, 환경은 파괴되서 빙하가 녹아내리고, 지진이 나고,

북한은 로켓을 쏘아댄다 하고, 제주도에선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뉴타운 재개발, 강남 재건축 타격으로 집값은 자꾸 떨어진다고 하고, 그런 한쪽에선 집 한칸 없이 쪽방에 사는 사람도 있고, 학교 폭력은 수위가 높아져가고, 젊은세대 실업률 높아진다고 하고, 노인문제도 심각하고.....

 

그래서 뭐, ,

내 이사가 뭐 어때서!

 

확 쏘아 부쳤으면 마음이 홀가분했을까?

마음이 한켠이 허전하다.

 

애정어린 비판은 말하는 이가 비판이 아니라 애정쪽에 온 체중을 실어야 비로소 비판의 역할을 다할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눈매로 상대가 빠져나갈수 없을 정도로 조목조목 따져야 제대로 된 비판이나 조언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모질기만 한 건지, 앞뒤 가림없는 사랑만 승()한 건지 구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충고나 비판을 들었을 때 흔쾌히 수용하는 수위가 어느정도였는지 또 왜 그랬는지를 떠올릴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홀가분> 모진사랑


걸어서 저강물 끝까지 내글

2월이 끝나갈 무렵, 우연한 기회에 우연한 인연으로 함께한 강물과의 조우.
천호동에서 버스를 타고(112-1) 20분도 채 안돼 내린곳은 중앙선 팔당역근처.
팔당역에서부터 양수역까지 약 12km되는 길을 강물따라 죽 걸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이곳 자전거길로 쭉 따라가면 충주(?) 대전(?)까지 이어진다고 들었다.
그 자전거길 옆으로 걷기길이 나란히 나 있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걷고 또 걷다보니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져 오히려 상쾌했다.
자전거길 아래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내달린다.
.
새로운 3월을 준비한다던가, 봄맞이라던가 그런 아무 이슈나 꺼리도 없이 무작정 운동화 구겨신고 따라 나선 길인데...
햇빛을 받아 반짝 반짝 빛나며 흐르는 강물을 찬찬히 바라보며 걷다니, 이것은 누구의 선물일까?.

똑딱이로 그 풍경이 다 담아질것 같지도 않고 카메라보다는 눈에 담는것이 더 욕심이 나 사진은 몇장 못건졌지만,
마음속엔 아직도 그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다.

양수역 근처 순이네라는 국수집의 멸치국수 맛도 아직 혀끝에 생생. 국수값은 3,500원이다.
돌아올때는 양수역에서 중앙선 타고 도심역(덕소)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지만 중간중간 이렇게 흔적을 남겨놓아 기차길에 대한 향수를 달랠수 있었다>
         
         <언제 봐도 마냥 좋기만 한 강물, 아침 햇살에 반짝 반짝 빛나는 물결>
         
         <걷는길 바로 아래로 보이는 차도>
         
         
         
          <옛날 작은 간이역인듯 하다. 다음번에 갈땐 꼭 들어가봐야지>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내글

 

그 옛날의 일들은 실제로는 그랬을리 없는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저승에서 아마도 우리는 먼 과거에 이승에서 살았던 삶을 바로 이런 감정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주교> 중에서


때로 삶이 힘들고 재미없게 여겨질 때
, 그럴 땐 어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그러다 이대로 생이 끝난다는 게 겁이 나기도 했다. 이생에서의 삶의 흔적으로 저승에 머무는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행복한 삶이 그 행복한 흔적으로 천국이요, 불행한 삶은 그 불행한 흔적이 지옥일거라고. 그러니 고통속에서도 행복을 찾아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안톤 체호프
, 당신도 그런 생각 했었네요.

그런데 당신은 비록 이승에서는 누추한 먼 과거의 삶이지만 저승에서는 황홀한 모습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질거라는 생각을 했군요. 그래요, 그런 생각이 더 좋겠어요.


사실
, 안톤 체호프 단편선에 실린 10개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그다지 고결하거나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듯 하다. 내가 들은것은 이러하다.


내 운명을 받아들이겠어
. 그러나 결코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비록 아름다운 삶의 기억들은 없지만, 삶을 감내해가며 얻은 통찰력이 있다고.

그것을 말해주겠어.


상식있는 진실한 인간도 자신의 선의에 반하여 가까운 사람에게 까닭없이 가혹한 고통을 줄수가 있는 것이다. ... 중략 ... 다리에 이르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괴이한 냉담함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기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명백했다. 그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것은 영리한 인간들이 종종 과시하는 그런 이성적인 냉담함도, 자아도취적인 바보의 냉담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영혼의 무기력, 아름다움을 깊이 지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며 또한 빵 한조각을 얻기 위한 지저분한 싸움과 독신의 하숙방 생활, 그리고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얻어진 조로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 <베로치카> 중에서


내안의 어떤 두려움 내글

아이의 입시가 끝나 교육상의 명분까지 없어졌으니, 오랫동안 살아왔던 집을 옮기고 나만의 터전을 새로 일구겠다는 희망도 잠시  남편이 새해벽두부터 영업최전방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경제기사는 모두 내수부진, 경기침체...

 

지금 집에서 생활에 불편이 없다는 남편에게 이사가자고 조르는 말을 차마 더 할 수가 없다.

50여년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을 떠나 생소한 지역의 생소한 영업 관리업무. 오히려 신경쓰인다며 혼자 내려간 객지생활에 주말마다 피곤에 초췌해진 모습으로 올라오는 남편이다. 주말마다 기절하다시피 잠든 모습을 보면 이사생각은 언감생심, 덜컥 겁이 났다. 무리한 업무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라도 오면 어떡할까, 얼마나 회사에 더 있을 수 있을까, 이제껏 직장생활만 해온 사람인데 다른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밀려오는 두려움으로 한달여를 넘게 보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것인가? 내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선은, 내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당장 남편이 건강에 무리가 오거나 직장을 잃게 된다면 내가 남편을 대신해서 가정경제를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고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머리 복잡하니 몸이나 움직이자고 짐정리를 시작했다.

정리를 하다보니 마음의 정리도 되는 듯,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기는 것이지 않은가?

월급쟁이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면 어떻든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될 것 아닌가?

사실 말이지, 지금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지만 생활의 큰 변화를 모르는 실정이다.

서울에서 함께 생활했을때도 주말에나 겨우 얼굴보고 같이 밥먹는 생활.

뭐 상황이 꼭 나빠졌다고 볼수만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일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한편으론 나약한 자신을 핑계대며 돌아앉은 삶에 정면으로 도전해 볼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생각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지만, 마음의 각오라도 해놓는 기회를 가져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런 일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처럼 큰 변화는 아니지만 몇 번의 위기로 여겨지는 변동사항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어찌 어찌 연명하듯 곡예하듯 생활을 이어왔다. 그 사연들은 짐을 버리고 집안 정리작업을 하며 다시 마주한 20여년전부터 몇년전까지의 일기장들에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그 일기장들을 읽다보니,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주저앉게 만든 것, 힘든상황과 시간들을 견디어낸 힘은 희망도, 뭣도 아니고...막연한 두려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또 뭔가 되풀이 되려는 외부적인 상황에 대한 나의 가장 첫 번째 반응 두려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것인가가 나의 과제이다.

 

이번기회(?)에 내 안의 두려움을 잘 다루어 볼수 있다면, 어쩌면 나는 이사에 연연해 하지 않고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사는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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