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집안정리 하다가 어느 책갈피에선가 툭 떨어진 인쇄물, 이게 그러니까 언제적 것인가.
2004년 11월이라고 (0411)이라고 메모되어있는 것을 보니 어림잡아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적인 것 같은데, 제목이 뜬금없이 ‘수능, 수능뒤에 기다리고 있을 내가 디자인할 세상’이다. 아니,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수능관련기사에 관심을 갖고 스크랩해 놓았단 말인가? 읽었던 기억이 날듯말듯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세월의 빠름이 새삼 실감나기도 해 청소하다 말고 쭈구리고 앉아 읽어보았다. 8년쯤 전의 수능관련 기사인데(살펴보니 ‘사람과 책’이라는 교보문고에서 매월 발행하는 무가지에서 뜯어놓은 것) 지금상황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다른것들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 이 세상에 왜 ‘입시’만큼은 변함없이 되풀이 되는지. 오히려 수시응시제도가 새로 생겨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아이들을 싣고 내달리는 더 열악한 장면이 추가됐달까...
‘수능을 보기 직전 주말에는 전국의 교회, 성당, 사찰에서 일제히 수험생을 위한 뜨거운 기도가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아침부터 경찰과 119차량을 비롯해 수험생을 태운 특별수송차량들이 오갈테고, 시험이 끝나는 초저녁이면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이 수능 정답과 해설을 위한 특집방송과 지면을 할애할 것이다....<중략> 짧게 잡아도 지난 20년간 국가가 주관해온 이 초대형 울트라 대입시험 이벤트를 놓고, 게다가 초,중,고 12년의 노력이 이날 하루의 시험으로 판가름 나는 전대미문의 투기형 게임판에서, 이때가지 쏟아부은 수험생과 전국 집집의 에너지를 생각할 때, 온갖 눈치를 살피다가 기대가 꺾이고 가슴에 상처를 입는 매년 99%의 수험생들에게 ’수능이 전부가 아니니 좌절하지 말자‘는 한가하고도 얄미운 소리를 나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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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이는 초등학생이었건만 엄마는 많이도 부담스러웠나보다. 지금 읽어도 공감이 가고 위로가 되는 대목이 있었으니... 아마 요 부분을 두고두고 읽고 싶어 보관해 온 것이 아닐까?
‘이렇듯 나는 수능 수험생들을 향해 ’수고했다‘고 위로할 염치도 내려놓았고 ’걱정말라‘고 장담할수 있는 용기도 포기한 상태다. 대신 수능에 얽힌 지난 십수년간의 엉터리 시나리오에 대해 수험 당사자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가빴던 숨을 조금이나마 차분히 가라앉히게 되길 바랄뿐이다. 우리 인생에는 허황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일에 죽자살자 매달려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른들의 삶에 깃든 부조리와 모순과 대책없음에 청소년들도 이제 입장하는 셈이다.’
‘1% 이내의 학생들이 걸어갈 그 길에 대해서 99%의 학생들은 차라리 ’너희는 너희의 길을 잘 가라‘고 축하해주자고 말하고 싶다. 대신 99%의 학생들은 당했던 각자의 고통만큼 성숙해진 자세로 다른 인생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중략>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너의 청춘을 남김없이 탕진하라고 권하고 싶다. 만약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것을 찾아 인생의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힘닿는대로 여러우물을 파보길 권고한다. 기대했던 샘물이 솟구치지 않더라도 네가 손수팠던 그 모든 우물이 너의 인생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파보고 또 파보는 가운데 너는 어쩌면 네가 꿈꾸지 않았던 네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너의 진짜 성장이고 너의 참 행복일수도 있다.’
전력질주를 해도 부족할 입시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도 한참전인 초등학교때부터 벌써 99%의 길에 선 편에 공감과 위로를 느끼는 어리바리한 엄마의 어수룩한 뒷바라지를 받으며 아이는 재수 끝에 소위 SKY에 한참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름으로는 만족스런(그럼 됐지 않은가!) ‘인서울’의 성과(?)를 거두고 자칭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근 한달을 넘게 체력이 딸릴만큼 가열차게 놀고 있다. 밖에서 무얼하고 지내는지 다는 모른다. 가끔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오기도 하고, 전화기 너머로 당구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아프다고도 한다. 너무 늦어 집에 못들어오겠다는 걸 잠은 집에서 자라고 설득(애원?)해 새벽에 집에 들어온적도 있다. 고등학교때나 재수시절에도 열심히 공부만 하는 축은 아니었기에 노는것에 한이 맺히지는 않았을 텐데 내 보기엔 죽기살기로 노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이것이 혹여라도 명문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에 가지 못한것에 대한 모종의 결핍감(열등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에 대한 보상심리는 아닐까라는 노파심이 들기도 하고, 막상 이 시기의 아이들이 같이 놀만한 놀거리가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 아이들 노는 걸 보면 우리부모 세대나 별 달라진게 없어 보인다. 그저 몰려다니며 음주가무나 소비성 문화에 쩔어드는 것이다. 어쩌면 그 전보다 더 열악해진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학교앞 동네서점은 사라진지 오래된채 자본의 속성에 더 빨리 깊이 빠져들게 되는 외식숙박업소들이 더 진화해서 포진해 있고 아이폰이나 게임이 추가 됐으니 말이다.
여행을 권해보았는데 혼자는 싫단다. 마음맞는 친구와 상황이 맞기도 어렵다. 혼자여행의 묘미를 알기엔 아직 어린건지,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는 건지...둘다인 것 같기도 하고. 근처 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하는게 들어볼만한게 있어 권해 보았더니 도서관을 무슨 고대 박물관처럼, 그런말을 하는 엄마를 무슨 미이라 쳐다보는 듯하다. 작년에 학교들어간 친구들 몇은 나꼼수 쫓아다닌다고 엄마들이 걱정하던데, 차라리 그런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작년에 학교들어간 친구들과는 그닥 친하게 지내지 않는 눈치다.
운전면허도 영어공부도 운동도 다~ 나중에 한단다. 정녕 그런건 공부에 인이 박힌 아이들이나 하는건가? 정말이지 인생에서 두 번 오지 않을 청춘의 한 시기를 이렇게 보내는게 엄마의 짧은 생각에는 무의미해보기고 아쉽기만 하다.
이제 설 지나고 나면 추가 합격발표도 어지간히 마무리 되고나면, 또다시 입시도돌이표는 어김없이 진행될 것이다. 수능이 뭐길래, 수능만 끝나면 정말 ‘뭐라도 되겠지’라고 생각했건만 막상 겪어본 두 번의 수능은 그저 무심히 돌아가는 컨베이어밸트위에 아무것도 모른채 올라선거였고, 정작 중요한 것은 내려올수 있어야 하는 것(계약만료든, 중간에 뛰쳐내려오든)이고 내려와서 무얼 할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그 어떤 외부적인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에 기본적으로 다지고 갖춰야 할것이 무엇인지, 중심을 잘 잡고 잘 따져보고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배운적 없는 것 같고 실은 이 나이 되도록 시시때때로 애정남(애매한걸 정해주는 남자: 다 알고 있으려나?)이 필요한 처지에 그런걸 아이에게 알려줄수 있을지, 아이들은 어디서 배울수 있을지...
이제 입시도 다 끝났고, 이 스크랩물은 이제 버려도 되는데... 이 어리숙한 에미는 뭐가 그리도 미련이 남고, 못내 불안한지 오래묵은 종이쪼가리 하날 쉽게 버리질 못하고 다시 줏어들었다. 어차피 자리도 많이 차지 않는 것, 화장실근처에라도 두어 활자중독증세가 조금 있는 아이가 볼일보면서 한번쯤 읽어주었으면 좋겠어서이다. 그래서? 음...이 시기를 좀 더 알차게 보냈으면 좋겠다.(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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